2024. 10. 23. 21:44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영화
- 늘 현실이 더 대단하다.
- 안나 켄드릭의 첫 연출작
- 쫀쫀하고 흥미롭게 극이 진행된다. 그런데 실화라니…
오늘의 여자 주인공 Woman of the Hour, 2024
- 출시 : 2024. 10. 18
- 국가 : 미국
- 장르 : 드라마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타임 : 95분
- 감독 : 안나 켄드릭
- 출연 : 안나 켄드릭, 다니엘 조바토, 토니 헤일, 어텀 베스트 등
- 채널 : 넷플릭스
- 로튼토마토 : 신선도 90%, 팝콘 69%
- IMDb : 6.7
줄거리
배우를 지망하는 여성, 그리고 살인 행각을 이어오던 연쇄 살인범. 70년대 LA에서 두 사람이 《데이트 게임》에 출연하게 되면서 서로의 삶이 교차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
출처 : 넷플릭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 영화를 선택할 때, 나는 나름대로 이야기를 상상했다. 한 여자가 있고, 연쇄살인범이 있다. 이 두 사람이 데이트 쇼에서 만나게 된다. ‘아, 이 데이트 쇼에서 여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의 범죄를 파헤쳐 그를 잡는 거구나.’ 하지만 내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나름의 스토리를 상상한 데에는 셰릴 역을 맡은 안나 켄드릭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묘한 카리스마로 굉장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 역할이 떠올라 이번 영화에서도 안나 켄드릭이 극을 이끌고 범인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했다.
줄거리
1977년 와이오밍, 여성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며 매력을 발산하는 로드니 알칼라(다니엘 조바토)가 등장한다. 여자는 사진작가인 로드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순간, 남자는 갑자기 여자를 공격한다.
1978년 할리우드, 연기 지망생 셰릴(안나 켄드릭)은 배역을 얻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있다. 똑똑하고 매력적인 그녀였지만, 제작자들이 찾는 건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오디션이 잘 풀리지 않자, 셰릴은 자신의 에이전시 역할을 맡고 있는 헬렌에게 오늘의 오디션 내용과 함께 답답한 상황을 털어놓는다. 헬렌은 그런 셰릴에게 얼굴을 알릴 좋은 기회라며 TV 쇼 게스트 자리를 제안한다. 셰릴은 잠시 설레었지만, 그 쇼가 데이트 프로그램임을 알고 실망한다. 연기를 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저급해 보이는 데이트 쇼 캐스팅은 원하던 기회가 아니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셰릴은 결국 <Dating Game>에 출연하기로 한다.
데이트 쇼 당일, 진행자 에드 버크는 셰릴에게 "너의 지적인 면모는 감춰라. 남자들을 기죽이지 말고 그냥 웃기만 해"라고 지시한다. 지시? 지시가 아니었다. 에드는 그런 개소리와 함께 셰릴의 옷을 ‘flattering’ 한 의상으로 바꿔 입히라고 지시했다. 이 단어는 ‘1. 돋보이게 하는 / 2. 아첨하는, 비위를 맞추는 / 3. 으쓱하게 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 단어가 2번의 뜻으로 다가왔다.
찝찝한 마음을 안고 셰릴은 방송에 들어갔다.
여성은 칸막이 뒤에 있는 독신남 셋에게 이름, 나이, 직업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질문과 답변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 이 쇼의 룰이다.
셰릴에게 주어진 세 가지 선택지는 이랬다.
첫 번째, 똑똑해 보이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은 사람.
두 번째, "베이비, 우리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대놓고 들이대는 사람.
세 번째, 겉으론 꽤나 매력적이지만 사실은 연쇄살인범.
셰릴은 아마 삼재를 맞은 것 같다.
셰릴은 대본대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답답하고 지루한 대화가 이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연쇄살인범인 3번 참가자의 매력도가 점점 높아졌다.
방청객 중에는 이 상황을 두려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한 인물이 있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 쇼를 방청하러 온 로라였다. 그녀는 3번 남자를 알고 있었다. 과거 로라는 로드니에게 친한 친구를 잃었고, 친구의 죽음 이후 로드니를 신고했지만,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경찰의 손을 벗어난 친구의 살인범이 지금 로라의 눈앞에서, 전 국민이 지켜보는 데이트 쇼의 참가자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로드니에 대한 불안과 공포,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얽힌 감정을 이기지 못한 로라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를 쫓아온 남자친구에게 로라는 로드니와 친구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남자친구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분노한 로라는 남자친구를 쫓아내고, 스스로 로드니를 잡기 위해 TV 쇼 담당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녀는 신뢰받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사과하러 온 남자친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서에서도 로라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로라가 자리를 이탈하며 잠시 방송이 중단된다. 그 틈에 셰릴은 이 쇼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메이크업 스태프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메이크업 스태프는 그녀에게 조언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해. 너답게.”
방송이 다시 시작되고, 셰릴은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데이트를 진행한다. 그녀의 진짜 질문들을 받은 1번과 2번 남자는 그 질문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점점 멘탈이 무너진다. 이 상황에 당황한 진행자 에드는 방송을 빨리 끝내기 위해 서둘러 진행한다. 대화가 끝났고, 이제 셰릴의 선택만 남아 있었다.
- 제가 너무 심했나요?
- 에드는 당신이 심했다고 생각하겠죠.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 그러면 당신 생각은요?
- 자기, 난 1968년부터 이 프로에서 일했고 여자한테 추파 던지는 바보들을 수도 없이 봤어요. 내가 하나 배운 건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중요한 질문은 결국 같아요.
- 좋아요, 그 질문이 뭔데요?
- 누가 나한테 상처를 줄까죠. 셰릴이 그걸 더 분명하게 물어본 거고요.
셰릴은 결국 3번 남자를 선택한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라도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의 대답과 태도는 다른 남자들과 비교될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여자를 존중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쇼가 마무리되며 셰릴은 1번과 2번 남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때 2번 남자는 조심스럽게 "3번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녹화가 끝난 후, 셰릴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3번 남자, 즉 연쇄살인범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셰릴은 점차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가 상황을 좀 어렵게 만들죠?
로드니와의 대화가 길어지자, 셰릴의 불안함은 점점 커져갔고, 분위기가 나빠졌다. 그때 그녀는 로드니에게 자신의 이 분위기의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셰릴에게 분위기를 전환하고 그 남자의 마음을 풀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나쁜 분위기를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이전, 자신의 이웃 남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셰릴은 자신을 탓했고, 결국 원하지 않는 잠자리로 이어진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똑똑했으며, 위험한 상황을 잘 인지했고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던 셰릴은 식당 종업원과 주차장의 사람들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모면했다. 그리고 그녀는 할리우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지쳐 그곳을 떠나기로 한 날, 그녀의 단호한 얼굴에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1979년 샌개브리엘, 가출 청소년 에이미에게 로드니가 접근한다. 그는 에이미에게 입바른 칭찬을 하며 그녀의 호감을 샀고, 결국 모델로 캐스팅하는 데 성공한다. 두 사람은 촬영을 위해 외진 곳으로 함께 떠났다. 에이미와 로드니는 마음이 잘 통하는 듯했지만, 영화의 시작 장면처럼 사람이 없는 외진 곳에 도착하자 로드니는 본색을 드러냈다.
자기 괜찮아? 어젯밤에 일이 좀 험하게 돌아갔지?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 일 비밀로 해줄래? 부탁이야. 너무 쪽팔려서 그래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 싫어
다른 여성들과 달리, 에이미는 죽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로드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영리한 소녀는 로드니를 타이르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결국 그는 그녀를 풀어주고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잠시 그가 자리를 비운 순간, 에이미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곧바로 그를 신고했다. 그렇게 로드니는 경찰에 붙잡혔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리뷰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무 죄 없이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영화에서 잠시 나오지만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남성도 그의 표적이 된 듯했다) 범죄자의 표적이 되어 삶을 마감하거나 무너졌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차별점이다.
영화는 크게 3명의 피해자 셰릴, 로라, 에이미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편집하고 중간중간 로드니의 다른 범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흐름을 놓칠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지만, 셰릴, 로라, 에이미 역할의 배우들이 극을 잘 이끌어 주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고 몰입감 있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영화 후반부 갑자기 로드니가 잡히고 영화가 끝이 난다. 처음 영화가 끝났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결말을 받아들이며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남은 그녀들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이 영화가 갑자기 끝났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마도 내가 어떤 통쾌함을 기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로드니의 행동에 분노하다가 극에 달했을 때 그 어떤 통쾌함도 없이 그저 경찰에 잡힌 그를 보는 것이 시원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겠지. 범죄자는 경찰에 잡히고 법적 책임을 묻게 된다. 이것이 당연하고 정답인 결과인데, 최근 접했던 여러 콘텐츠 때문인지 그 결말이 너무 답답하고 범죄자에게 아주 너그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적 복수극이 유행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셰릴과 에이미였다. 셰릴 역을 맡은 안나 켄드릭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그 역할 자체의 매력도 컸다. 셰릴은 똑똑하고 당당하면서도, 늘 어떤 부분에서 짓눌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남성과 1:1의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이웃 남자와 함께했을 때, 그녀는 그 남자가 싫었지만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데이트 쇼 이후 로드니와 함께했을 때 역시, 그녀는 두려움에 그 자리를 떠나는데 급급했다. 데이트 쇼 당시 자신의 흐름대로 쇼를 이끌던 당당하고 똑똑한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보다 강한 힘에 짓눌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셰릴만이 그곳에 있었다.
안나 켄드릭은 셰릴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해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안나 켄드릭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그녀가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에이미는 등장부터 정말 예뻤다. 사랑스러움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그녀의 애띤 모습이 로드니의 타깃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에이미는 약해 보였지만, 폭력을 당한 후에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강한 모습으로 로드니를 다독이며 자신의 손을 묶고 있던 매듭을 풀게 만든다. 그때 그녀는 로드니에게 “매듭을 잘 묶는다”며 칭찬까지 해줬다.
이렇게 똑똑한 친구였다. 에이미는 타이밍을 계속 노리며 로드니가 긴장을 놓친 순간, 최선을 다해 도망치고 신고한다.
“나라면 에이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절대로 못했을 것 같다. 에이미는 자신의 현명함과 침착함으로 자신을 지킨 캐릭터였다. 그 모습이 실화라는 것 또한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에이미 역을 연기한 어텀 베스트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어텀 베스트의 손이 묶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뭔가 낯설어 꽤 오랫동안 봤던 기억이 있다. 리뷰를 정리하며 이 배우에 대해 알아보니, 어텀 베스트는 선천적 지결손증으로 왼손에 엄지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처음 그 손을 봤을 때는 영화적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했었다. “저 손이 이상한데, 이건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배우의 손이 나와 다르게 생겼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어텀 베스트의 연기를 보고 나니, 앞으로 장애와 배우, 직업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재미’라는 단어를 붙여도 되는 영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내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화의 배경이 1970년대이지만, 그때의 여성으로서의 두려움이 현재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리적 힘의 약자로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일정 부분 이런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이 짠했고, 남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무서움도 느껴졌다. 여러 가지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 영화였다.
1979년 2월 14일 십대 가출 소녀는 이 만남을 비밀로 지켜 달라고 하며 로드니 앨칼라한테서 도망쳤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앨칼라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그 기간에 21살 여자와 12살 소녀를 살해했다.
앨칼라는 1979년 다시 체포됐다.
그때서야 경찰 당국은 범죄 규모를 밝혀냈는데 10년 넘게 생존자들과 여러 시민이 앨칼라를 신고했으나
경찰은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 앨칼라는 결국 여자와 소녀 7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 당국은 실제 피해자 수가 13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31년의 수감 생활 후 앨칼라는 석방의 기회를 얻었지만 성인이 된 가출 소녀가 법정에서 불리한 증언을 했다.
다음은 검사의 말이다.
‘이 여성이 나타나 로드니의 관에 못을 박았어요.’
뚜벅 추천 지수 : 80%
사이다는 아니지만, 이게 현실이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