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3. 23:48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영화
- 기괴한 광복절을 맞이하며복잡한 마음
- 2024년 대한민국이 쌓아가고 있는 유산이 바람직한가
- 복잡한 마음
위대한 유산 The Burial, 2023
- 출시 : 2023. 09. 11
- 국가 : 미국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등급 : 19세이상 관람가
- 시간 : 2시간 7분
- 감독 : 마가렛 베츠
- 출연 : 제이미 폭스, 토미 리 존스, 마무두 아티, 저니 스몰렛벳, 아만다 메이슨 워렌, 빌 캠프, 앤런 럭 등
- 채널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 로튼토마토 : 신선도 92%, 팝콘 82%
- IMDb : 7.1
줄거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합의까지 마친 거래가 무산되면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제러마이아 오키프(아카데미상 수상자 토미 리 존스)는 카리스마 넘치는 변호사 윌리 E. 게리(아카데미상 수상자 제이미 폭스)를 고용해 가업을 지키려 한다. 흥분과 웃음이 난무하는 와중에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기업의 부패와 인종 불평등을 폭로하면서 유대감을 쌓는 감동적인 성공담이다.
출처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1. 실제 결말
- 평결에 항소한 로언 그룹은 1억 7,500만 달러에 최종 합의했다. 2년 후, 레이 로언은 로언 그룹의 회장과 CEO직에서 사퇴해야 했고, 그로부터 1년도 안돼 로언 그룹은 파산 신청을 했다.
- 재판이 끝나고 제리와 애넷은 자선 단체를 설립하여 사회 취약 계층을 도왔고 40$ 이상의 오키프 재단 지원금이 다양한 흑인 단체와 교회 및 학교를 돕는데 쓰여졌다.
- 브래드퍼드-오키프 장례식장은 미시시피주 남부에서 최대규모의 가업 장례식장으로서 지금까지 번성하고 있다.
-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재판 변호사가 된 윌리 게리는 앤호이저부시와 월트 디즈니 같은 거대기업을 상대로 수차례 승소를 일궈냈다. 그는 자신을 ‘거인 킬러’로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 윌리와 제리는 제리가 사망한 2016년 8월 까지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실제 결말은 말 그대로 권선징악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 로언이 오키프에게 협상을 시도할때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자
“한 수 가르쳐 주죠. 날 망하게 할 정도가 되려면 말이오. 진짜 그 정도 되는 액수는 당신 머리론 계산도 안돼요.”라는 말을 짓거렸던 로언이 기억에 남는다. 굳이 그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오키프는 로언은 3년안에 망했다. 실제 결말이 가장 짜릿했다.
2. 적정한 온도의 법정물
법정물, 정치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실화 기반이면 확실히 더 흥미가 생긴다. 그런 종류의 작품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물의 ‘온도’이다. 내가 뜨거워야지, 그 인물이 뜨거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정물의 경우, 인물이 너무 뜨거워지면 오바하게 되고 자칫 오그라듦으로 연결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그 업계 신입들이 뜨겁곤 한다. 물론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사건이 보조로 사용될 때가 있는데, 이 방법도 좋아하지 않는다. 셜록 홈즈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만들어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뜨겁지 않고 적정한 온도에서 현명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좋다.
위대한 유산은 말 그대로 아주 적정한 온도의 법정물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엔 참 단순한 사건이었다. ‘대기업이 자영업자를 등쳐 먹은 것 같아요.’ 그런데 서서히 서사를 이어가더니, 결국 인종차별 문제와 대기업의 거대 횡포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처음엔 양아치 사기꾼처럼 보였던 게리가 진짜 의뢰인을 생각하고 사건을 이기고 싶어 하는 변호사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후반부는 충분히 무거울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제이미 폭스의 연기가 그 부분 또한 중심을 잘 잡아준 것 같다.
3. 자영업자와 대기업
자영업자와 대기업의 싸움은 현실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몇몇 대기업이 PB 제품을 만드는 과정, 가맹점을 대하는 태도, 해마다 바꾸는 간판… 너무 예전부터 행해지던 일들이라 이제는 익숙하다. 오키프가 로언 그룹에게서 당한 일도 ‘그랬다더라’ 하는 방식으로 꽤 오래 들어온 이야기다. 바뀌지가 않는다.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이런 승리한 싸움이 있기에 누군가는 또 일어서 투쟁한다. 대기업과 자영업자의 싸움은 돈 많은 어른이 2, 3살 조카의 사탕을 뺏어 먹는 느낌이다. 그렇게 가져도 더 가지고 싶나 보다. 한 마리에 30달러씩 하는 랍스터가 김밥집 단무지처럼 쌓여 있는 삶과,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전기가 끊기는 삶. 애초에 왜 이 두 집단이 싸움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 쉽게 ‘상생’을 말하지만, 진짜 힘이 있는 쪽이 그 ‘상생’ 뒤에 숨어 취하는 불평등한 이익에 대해 깊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부끄럽고 답답한 마음이다.
4. 흑인과 백인
영화를 보다 보면, 선을 그어두고 각자의 자리에 서 있던 흑인과 백인이 결국에는 뒤엉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장면은 마이크가 성공적인 증인 심문을 끝낸 후 잘 드러난다. 심리적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마이크는 처음에는 흑인들을 적대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건을 해결하며 피부색이 아닌 같은 사람으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이크는 성공적인 심문을 마친 날,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흑인인 테이블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식사했다. 그 시간, 핼은 다른 백인 변호사들과 함께 사건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핼은 흑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었다. 처음 흑인 변호사들이 마이크의 사무실에 등장했을 때,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왔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느새 핼의 지휘 아래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알 수 있다.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피부색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을 이 세상이 다 알게 되는 날은 도대체 언제쯤 올까. 세상이 차라리 흑백이었다면 인종차별은 조금 덜했을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데, 눈에 보이는 피부색으로 선을 긋고 상대를 규정지은 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참 우습다.
5. 현재의 대한민국
작성하는 날짜 기준 내일이 광복절이다. 내 기억에 존재하는 시기만 따졌을 때, 가장 시끄러운 광복절이 될 것 같다. 우리의 유산 위에 자꾸 이상한 흙과 거짓 유산을 덮어 감추고 폄하한다.
영화를 보며 가장 뜨악했던 장면은 마이크가 증인이 되었을 때, 그의 할아버지가 KKK임이 밝혀진 장면이다. 그 순간, 저 상황에서 나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가족이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고, 내 친구의 할아버지가 극우의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며 내 가족을 죽이기 위해 살아갔던 사람이라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런데 내 친구는 할아버지이기에 사과할 수 없단다. 앞으로 그 친구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가 겪은 일도 아니고 현시대의 일도 아니지만, 선대에게 전달받은 유산이 있기에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기에 그 친구와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흑인들이 바란 것은 마이크의 사과였다. 그는 끝까지 사과하지 못했다. 어쩌면 마이크 역시 선대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에 쉽게 사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극 초반 마이크의 흑인에 대한 편견 역시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좋은 것만, 바람직한 것만 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럽고 옳지 못한 것도 유산이 된다. 내가 물려받은 유산에 대해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진짜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 아래에는 어떤 유산이 쌓여 있고, 내 위에는 어떤 유산이 쌓이게 될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시기와 상황이 이 영화를 조금 더 깊게 보게 만들었다.
뚜벅 추천 지수 : 89%
의미부여는 많이 했지만, 어쨋든 재미있는 법정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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