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9. 13:46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영화
- ‘나답게 살아라’의 모순
-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자
- 내게는 새로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작품
히트맨 HIT MAN, 2024
- 출시 : 2024. 06. 07.
- 국가 : 미국
- 장르 : 코미디
- 등급 : 19세 이상 관람가
- 시간 : 1시간 55분
-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 글렌 파월, 아드리아 아르호나 등
- 채널 : 넷플릭스
- 로튼토마토 : 신선도 97%, 팝콘 95%
- 뚜벅지수 : 90%
줄거리
경찰의 의뢰로 부업 삼아 살인 청부업자 행세를 하는 온화한 성품의 교수. 그런 그가 잠재 고객에게 끌리기 시작하면서 여러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온다.
출처 : 넷플릭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며칠 전 다시 본 <먼 훗날 우리>가 던져버린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오랜만에 재미있고 즐겁게 영화를 봤다. 처음에 포스터가 너무 싫어서 안 봐야지 하다가,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다 부숴버리자는 마음으로 결국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를 보기 전 그래도 감독만 확인하자 싶었는데, 세상에나 <어디 갔어, 버나뎃>, <보이후드>,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의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간다.
- 사람은 도전적이어야한다는 말인 것 같아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요
인생은 짧으니까요
열정적으로 살고 소신대로 살라는 거죠
- 그래 내 답은 딱 세단 어야
그. 렇.지.
- 차는 혼다 시빅 끌면서 뭐래
영화는 한 교수의 지루한 강의로 시작된다. 존재가 어떻고... 미지의 바다가 어떻고... 교수님의 모습도 꽤나 지루하다. 머리의 가르마, 셔츠, 안경 등 어느 하나 세련된 것이 없다. 학생들도 그를 지루해한다. 열정적으로 살아라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그는 혼다 시빅을 끌면서 그런 소리를 한다며 조롱을 받는다.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 ‘게리 존슨’이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친다. 그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지루하고 단조롭다. 그는 현재 투잡 중이다. 전자 기기와 디지털 기술에 능해 잠복 형사의 통신, 도청 관련 기기를 컨트롤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살인 청부와 관련되어 있으며, 함정수사를 통해 잠재적 범죄자를 잡는 일이다.
어느 날, 언더커버 형사 역할을 하던 즉, 가짜 킬러 역할을 했던 팀원 재스퍼가 사고를 쳐 그 임무를 할 수 없게 되자 대타가 필요했고, 게리가 가짜 킬러가 되어 의뢰자를 만난다.
그의 킬러 네임은 ‘론’이다. 그렇게 론의 킬러 인생이 시작된다.
론은 첫 임무부터 완벽했다. 마치 수십 년 킬러를 해본 사람처럼 노련하게 행동했고, 의뢰자는 결국 그에게 낚여 돈을 건넨다. 완벽한 증거를 얻었으니 그 의뢰자는 바로 감옥으로 간다. 세상에 처음 나온 론은 그의 본캐인 게리보다 당당하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매력은 게리가 되는 순간 사라졌다. 그 이후 론의 킬러 생활은 계속된다. 매우 성공적으로.
- 요새 많이 읽은 건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로도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야
- 바뀐다는 게 뭔데?
- 성격의 다섯 가지 특성이 있잖아. 외향성 개방성 감정안정성 친화성 성실성. 전부 몇 개월 만에 변화할 수 있어
- 어떤 의미에서?
- 뭐랄까 그런 특성을 생각만 말고 받아들이는 거야. ‘가정원리’처럼 말이야.
되고 싶은 모습을 자기라고 가정하고 곧 그게 자기 모습이란 걸 깨닫게 되는 거지
- 그럼 그 전의 자신은 어디로 가고?
- 그대로 있어 그냥 많이 약화됐을 뿐이지. 새로운 자신이 강화되고
영화는 킬러 론과 철학과 교수 게리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람의 자아와 성격이 변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게리가 던지는 질문에 론이 답하는 듯한 느낌이다.
'게리, 네가 원한다면 가능해.'
처음에 게리는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게리는 론의 인생을 함께 살면서 스스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본인보다는 그의 동료와 학생들이 먼저 느끼게 된다. '우리 교수님이, 저렇게 섹시했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전의 자아였던 게리는 약화되고 새로운 자아인 론이 강화되면서 주변의 반응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다 그는 매디슨을 만난다.매디슨은 론에게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론은 그녀를 설득해 살인을 청부하지 않게 하고, 그녀가 경찰에 잡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론은 연애에 있어서도 게리와 달랐다. 대담했고, 섹시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게리가 아닌 론은 그렇게 매디슨과 뜨거운 연애를 이어갔다. 이 둘의 섹스 장면 중 하나에서 롤플레잉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새로운 변화가 주는 자극이었다. 그 롤플레잉을 통해 또 다른 캐릭터가 생겼고, 그 캐릭터로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이 영화는 이렇게 곳곳에서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매디슨의 전 남편이 론에게 살인을 청부해 온다. 바로 매디슨을 죽여 달라는 것이다. 매디슨과 론이 함께 있는 것을 본 매디슨의 전 남편은 매디슨과 그의 남자친구 ‘론’을 죽여 달라고 ‘론’에게 요청한다. 살인을 청부하고 의뢰 내용을 모두 전달한 뒤, 그는 뒤늦게 론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란다. 그리고 론이 살인 청부 업자임을 알게 된 매디슨의 전 남편은 “내가 직접 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간다. 론은 매디슨의 안전이 걱정되어 매디슨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조심하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던 매디슨이 전 남편을 죽인다. 더 이상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론은 자신이 가짜 킬러이며, 진짜 이름은 ‘게리’라고 진실을 고백한다. 경찰은 매디슨의 전 남편의 죽음과 관련하여 매디슨을 용의자로 좁혀간다. 보험 문제로 인해 그녀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경찰은 정확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론을 재투입하여 증거를 얻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매디슨을 사랑했던 론과 그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매디슨은 살인 용의자 혐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론이 가짜 킬러가 되기 전에 가짜 킬러 역할을 했던 재스퍼는 과거에 론과 매디슨이 데이트하던 장면을 목격했고, 매디슨이 전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무마해 준 론의 역할까지 알게 되며 그들을 협박한다. 돈으로 해결하자고. 결국 매디슨과 론은 재스퍼를 죽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하게 잘 산다(?) 정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산다. 해피 엔딩이다.
대부분 자아를 속이고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다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면 해피 엔딩이 되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너무 재미있는 영화 <리플리>다. 자아가 붕괴되고 살인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그 인생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이런 종류 영화의 클리셰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살인을 저지른 두 인물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참고로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다. ‘자아는 정해져 있고 거짓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일반적인 논리에 대해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그 대답으로 ‘해피 엔딩’을 선물하는 느낌이다. 이 부분이 나는 좋고 흥미로웠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것,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이름으로 비난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살인은 안 된다. 불법은 절대로 안 됩니다.
다들 달라질 수 있어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지.
내가 분명히 아는 게 하나 있다면 각자의 현실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거야.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말이지.
그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권할게.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너희가 이 복잡한 세상을 나아가는데
내가 해줄 조언이 있다면 바로 이거야.
너희가 바라는 자아를 쟁취해.
이 수업을 듣고 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열정과 방치를 통해 그렇게 되도록 해.
마지막 게리의 강의 장면은 이 영화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해준다.
'니가 원하는 인생이 있어? 그러면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봐.'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본 이유는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가끔 내 인생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남과 비교하며 땅굴을 파고 엉금엉금 들어가는 편인 나는 이 영화가 꽤 좋은 응원과 의지가 되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열정과 방식을 통해 그렇게 되도록 해보자. 범죄가 아닌 이상 그 변화의 시도 자체가 나의 인생에 활력을 줄 것이고, 내가 정말 변화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봐서 너무나 행복하다.
+
덧붙여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단순히 캐릭터 설정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짜 킬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사진이 뒷부분에 나오는데, 정말 열심히 했구나 싶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이 있다.
파이 맛이 어때
세상에 맛 없는 파이는 없지
추천한다면
- ‘자아’라는 철학적 주제를 유쾌하게 고민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재미있는 영화는 좋은데, 남는 게 없는 영화는 싫은 사람에게도 좋은 선택이다.
-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팬이라면 바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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