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언니에게 가을이 오길 / 위픽 wefic -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 / 이서수

2024. 11. 8. 16:07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정혜에게 가을이 오길.
  •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 내 동생도 날 아끼도록 하여라.

이서수 작가의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 표지

 

위픽 wefic -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

  • 작가 : 이서수
  •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 발행일 : 2023. 11. 08.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116쪽
  • 채널 : 종이책

 

작가 소개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중편소설 《몸과 여자들》,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 《헬프 미 시스터》 《당신의 4분 33초》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소개

“사랑에 대한 모든 정의를 뛰어넘는 게 사랑이야.”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신작 소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주거와 고용의 불안정성 속에서도 나아가기로 다짐하는 청년들을 주목해 온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작가의 신작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이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정연’의 하나뿐인 언니 ‘정혜’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람이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들, 사랑하면 낙인이 되는 것들을 사랑한다. 온 마음을 주어도 언니가 사랑한 사람들은 언니를 떠나고, 언니는 한여름에 패딩 점퍼를 입고 아지랑이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그런 언니가 발견되는 곳은 재중 동포들이 사는 빌라, 이주 노동자들이 모인 ‘다문화거리’다. 한국이지만 한국이 아닌 곳, 가장 낡고 허름해서 그곳을 찾는 한국인이라고는 임장하러 온 사람들밖에 없는 도시를 징검다리처럼 건너다니는 언니를 찾을 수 있을까

출처 : 예스24

 

 

첫 문장

언니에게 그 사람은 봄이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 이야기는 정연과 그녀의 언니 정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상 사랑꾼 정혜와, 그런 정혜가 늘 아슬아슬해 보여 보호자를 자청하는 정연. 처음엔 정연이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정혜가 큰 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정혜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불완전한 인간일 뿐, 정혜는 완전하고도 넓은 사람 같았다. 전체 이야기는 두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으며, 첫 번째 챕터는 정혜, 두 번째 챕터는 정연이 조금 더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언니는 덥지도 않아?
추워.
뭐라고?
춥다고.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화를 내는 대신 언제쯤 춥지 않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언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답했다.
내후년 겨울.

 

첫 번째 챕터는 정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혜는 재중 동포들이 몰려 사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몇 년 전부터 외지인의 투기 대상이 된 곳이었다. 정혜는 봄 같은 연인과 헤어진 이후 한여름에 롱패딩을 입고 동네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정연은 언니가 사람들에게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걱정되어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정혜는 정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정연이 언니를 몹시 다그친 후 이튿날, 정혜는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를 만나러 갔고, 그날 정혜는 그곳에 입원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정혜는 전과 다르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홀연히 사라졌다.

 

어느 날, 정혜를 봤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정연은 언니를 찾아 나선다. 언니를 다시 만난 곳은 원곡동이었다. 그곳은 외국인이 가득한 곳으로, 정연은 모금함을 들고 거리를 서성이는 언니를 발견한다. 정연은 언니가 도망친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언니의 첫사랑 ‘박겨울’이 등장한다. 언니에게는 특별한 첫사랑,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연은 박겨울이 싫다.

 

 

 

 

정연아, 너는 첫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대답해 봐. 뭐라고 생각하?
처음 사랑한 사람이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첫사랑이야.

 

정혜는 늘 마음속에 첫사랑 ‘박겨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정연은 그런 정혜가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 언니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너무나 잘, 평범하게 살고 있는 박겨울을 보면 화가 났다. 그래도 다시 만난 정혜는 정연의 걱정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처럼 잘 살고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연과 정혜는 누구나 그러하듯 평범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결국 언니를 만나서 하게 되는 것들이 이토록 사소한 것이라면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겸연쩍어지지만 정말이지 별것이 없었다. 언니와 함께 하고 싶은 건 죄다 일상 속에서 흔히 하는 것들뿐이니까.

어쩌면 언니는 용감한 사람인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괴로우면 피하기 마련인데 언니는 그러지 않잖아.
나도 피해. 피하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럼에도 나는 언니에게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가을이 오면 언니가 가을 씨를 만나길 바랐다. 그 사랑이 오랫동안 신의 고함 속에 갇혀있는 언니를 평온함으로 끌어내주길 바랐다.

 

정연은 정말 언니 정혜를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남들은, 아니 다른 가족들까지 등을 돌리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언니를 정연은 지켜주고 싶었던 걸까. 여기저기서 사랑에 상처받고 점점 미쳐가는 언니를 보며 정연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 같다. 그럼에도 정혜 곁을 지키고 있는 정연이 기특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정혜는 그런 정연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유대가 더 튼튼해 보였다. 언니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 평범한 일상이라니, 참 스윗한 정연 씨.

 

 

 

 

두 번째는 스윗한 정연 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연은 얼마 전 결혼한 선배의 집들이에 갔다. 함께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때 같은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이었고, 회사가 문을 닫은 지금은 각자 다른 회사에서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그들 중 한때 마음을 주었던 ‘치강’도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여러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중국 동포’, ‘중국인’에 대한 이슈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누군가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이야기를 이어가자 분위기가 어두워졌고, 그때 한 사람이 자신의 중국 동포 형수 이야기를 하며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 말했다. 한 번 가라앉은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집들이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정연은 치강과 함께 남아 잠시 길을 걸었다. 정연의 언니가 원곡동에 살고 있다는 말에 치강은 자신의 할아버지도 그곳에 살았다며 잠시 길을 함께 걷기로 한다. 그는 길을 걷다 인력 소개 사무소 유리창에 붙은 구인 공고를 보며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치강은 정연이 사이 노동 인권, 차별주의 같은 것에 관심이 생긴 듯했지만, 정연의 기억 치강 역시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치강은 원곡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80년대에는 한국인 노동자들로 가득했던 원곡동이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 차게 사연들. 치강은 한국인이 많지 않은 이곳에 정연의 언니가 사는 것이 궁금해 정연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연은 쉽게 대답할 없었다. 그렇게 정연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짝사랑 상대인 치강과 알맹이 없는 쓸쓸한 말만 나누다 헤어졌다.

 

정연은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감자탕 집에 도착했다. 언니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언니를 보며 뿌듯해했다. 언니가 일을 마친 감자탕에 소맥을 곁들여 함께 마셨다.

 

 

 

 

언니는 스스로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품어선 안 되는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겉만 봐선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언니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언니의 과거를 잘 알고 현재의 마음도 안다고 섣불리 짐작하며, 언니가 자신의 추억들 중에서 무얼 잊고 기억해야 하는지 선별해 주는 폭군인지도. 그러면서도 언니에게 내가 무해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정작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는데. 그토록 잘난 척은. 아는 척은. 잘 살아가고 있는 척은. 어른인 척은.

 

정연은 정혜에게 오늘 만난 치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혜는 정연의 말에 시시콜콜 대답하기보다는 그냥 정연이 편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들어주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니는 사랑의 슬픔을 갓 깨달은 아이를 보듯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정연아, 그게 사랑이야. 네가 내렸던 사랑에 대한 모든 정의를 뛰어넘는 게 사랑이야.

 

정연과 정혜는 감자탕집을 나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연이 치강에 대해 이야기하자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정연은 닭살이 돋는 시늉을 했지만, 정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혜와 정연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을 읽고 나서 동생에게내가 정혜 상황과 모습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다. 동생의 대답은그래서 ?”였다. 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라도 그렇게 대답했을 같다. 나이가 들수록 동생이 귀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평생을 함께할 가족. 그런 존재가 곁에 있다는 복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와 정연도 나와 동생 같은 관계이지 않을까.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문득문득 여러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속에는 자매의 사랑과 관계뿐 아니라 현재 한국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한국인이 없는 한국 . 한국이지만 한국이 아닌 . 사람들은 그곳이 미래의 한국이며, 한국인으로 가득한 한국은 과거의 한국이라고 말한다.

 

사회 구조와 산업 변화로 인해 한국으로 유입되는 많은 외국인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편견과 문제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솔직히 갑자기 이런 문제까지 거론되는지 싶기도 했지만, 우리가 고민해봐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뚜벅 추천 지수 : 70%

미지근한 자매애가 따뜻하고 귀엽다. 정연과 정혜 모두에게 가을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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