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9. 21:07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나의 현실과 달라서 가장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 정규직이 되고 싶은 비정규직의 버팀.
- 절박한 노동자를 가담자로 만드는 직장은 어서 사라져라.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월급사실주의 2024
- 작가 :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24. 05. 01.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268쪽
- 채널 : 종이책
책 소개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 것
그 혹독하고 숭고한 일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매일매일에 대하여
월급사실주의 소설 동인의
지극히 현실적인 밥벌이 이야기 그 두번째!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출간으로 이어진 바 있으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이 동인이 내놓는 두번째 결과물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이다. 사회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감지해 온 작가들이 작심하고 직장을 무대로 써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산문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남궁인, 천현우 작가가 성공적으로 완성해 낸 첫 단편소설이 수록된 점,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의 장편소설로 사회적 약자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포착해 온 손원평의 최신작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책의 제목은 소설가 임현석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내놓아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인간적인 갈등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힘을 지닌 제목이다.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소설 역시 다양한 삶의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진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 하루도 애쓰고 있는 모든 일하는 존재들을 위한 이 책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발행된다.
출처 : 예스 24
작가 소개
이정연
201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 『속도의 안내자』가 있다. 제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03. 등대
#복어 전문점 #수습 직원 #위기감 #정직원 전환 vs 희망 고문
첫 문장
오늘도 주차 관리인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 책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의 여러 단편 중 나와 가장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분위기가 유독 판타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화자의 상황이 나의 현실과 많이 달라서였던 것 같다.
설희는 ‘등대’라는 고급 복어 식당의 종업원이다. 보통은 여섯 달이 지나야 수습에서 정규직으로 승급되지만, 설희는 업무 평가가 뛰어나 그 기간을 5개월로 앞당길 수 있었다. 설희는 이곳에서 최대한 버티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열심히, 똑똑하게 일했다.
정직원 전환을 두 달 남긴 때였다. 설희의 마지막 관문인 홀 서비스 과정에서, 그녀는 베테랑 직원과 함께 홀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곳의 손님들은 분위기가 묘했다. 그 묘함은 찜찜한 마음으로 이어졌고, 그 찜찜함은 결국 현실이 되어 설희를 덮쳤다. 어느 날, 손님들과 함께 있는 룸으로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설희는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범죄의 ‘가담자’ 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설희는 또 한 번 어처구니없이 어떤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잘못된 손질로 아마 독을 품고 있을 복어회를 바라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밝은 모습은 아니지만 종업원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말끔한 유니폼, 식당의 근무 환경 어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없었다. ‘등대’라는 식당 상호도 설희의 길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 그곳을 열심히 관찰하게 된다. 어쩌면 그 관찰은 나쁜 점을 찾기보다는, 좋아 보이는 점을 찾기 위한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절박하고, 그곳의 구성원이 되고 싶기에 좋은 점을 열심히 찾아본다. 설희는 찾고 또 찾다 ‘등대’라는 상호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냈다. 이 부분에서 설희가 얼마나 절박하게 이곳의 정직원이 되고 싶어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시답잖은 소리야 흘려들으면 되고, 그것만 참으면 이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거야. 설희는 진심을 누르고,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다고 능수능란해 보여 일터를 자주 옮겨 다닌 것이 들통나면 안 되었다.
우리나라는 회사를 자주 옮긴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제는 ‘평생직장’이라는 단어가 흐릿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회사를 옮겼다는 말속에는 여전히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의지가 약하다, 회사를 쉽게 생각한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개개인의 사정과 생각은 그 편견 속에 담기지 않는다. 설희도 회사를 자주 옮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상황과 사람들이 그녀를 이곳저곳으로 옮기게 만든 것이다. 혹시나 자신이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적당히 해내려 했을 것이다. 능숙하고 노련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마음과 태도에서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며 받아온 편견과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사실 직원 감시는 많은 곳에서 하고 있으니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사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 공장, 심지어 일반 회사에서도 직원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CCTV를 설치하고 있어 여기도 비슷한 변명을 댈지 몰랐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이 CCTV를 설치했다. 사장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고, 나는 워낙 어린 나이에 첫 사회생활이었기에 그 말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CCTV는 분명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감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CCTV 설치 문제에 대해 처음 문제의식을 느낀 건 어린이집 선생님인 친구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내 친구의 어린이집에도 어느 날 CCTV가 설치되었고, 그것은 모든 학부모에게 생중계되었다. 친구의 입장에서 화가 났다. CCTV 설치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제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 역시 그때와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CCTV가 필요한지 아닌지 단정 짓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명 처음에는 잘못되었다고 느꼈는데, 왜 나는 변했을까? 많은 부분에서 무엇을 단정 짓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 된 것 같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휘둘려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껄끄러운 상황이 생기면, 이를테면 CCTV로 자신을 감시하거나 손님이 성희롱성 농담을 하고 수상한 심부름을 시킨다면, 할 수 있는 만큼 항의하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바꿀 것이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내보내려는 게 아니라면 설희는 최대한 버틸 생각이었다.
설희의 목적은 하나였다. 이곳에서 버티자. 설희는 ‘등대’에 오기 전, 전자상가에 있는 대리점에서 7개월 가까이 일했다. 그러다 그곳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점장이 ‘정황상’ 그녀를 범인으로 몰았다. 지가 경찰도 아닌데도 그녀를 ‘정황상’ 범인이라 했다. 그 ‘정황’ 때문에 동료들 역시 그녀를 도둑 취급했다. 경찰 조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판명되었지만, 점장의 압박과 그곳의 분위기 탓에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퇴직금은커녕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었고, “어디에도 취직 못하게 만들겠다”는 점장의 악담에 도난당한 게임팩 값 58만 원과 위로금을 더해 100만 원을 대리점에 물어줬다. 이런 어제의 경험 때문에 설희는 그냥 참고 조용히 버티고 싶었다. 어쩌면 등대처럼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반복된 일이 지겨워진 직장인의 투정일 따름이다. 그저 소화가 안 되어 억지로 내는 트림 같은.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소화가 안 되어 억지로 내는 트림.’ 분명히 소화가 되지 않아 명백한 문제가 있지만, 근본 원인은 해결할 생각 없이 겉으로 소리와 악취를 내는 트림. 나도 그 트림을 뱉어내며 살아왔던 것 같다. 소화가 왜 되지 않는지, 소화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트림만 하면 상황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투정을 부리며 살았던 과거의 내가 생각나 부끄럽기도 했다. 내 트림을 받아주던 사람들은 얼마나 내가 시끄럽고 불편했을까 싶다.
“거기 참고인, 아니 가담자로 보이는데 바로 조사할 거니까 대기하세요.”
결국 일이 터졌다. 설희는 열심히 일한 죄로, 아니, 그저 일한 죄로 범죄의 ‘가담자’가 되었다. 그녀는 단지 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계약된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싶었다. 대단한 것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바라던 노동자는 범죄의 ‘가담자’가 되었다.
1. 가장 영화 같은 이야기
‘책의 중후반까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챕터의 이야기들보다 모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생각해 보니, 내 스스로 설희의 직업을 가장 낮춰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피아노 학원 선생님, 간호조무사… 명확히 어떤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라고 통칭되는 그 직업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그것을 낮춰 생각했다니, 나는 참 무지하고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를 읽은 후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문득 주인공들이 나쁜 일을 도모하기 위해 찾는 장소의 직업인들을 보면 요즘은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도망쳐요. 당신은 가담자가 될 수 있어요.’
프레임 안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뒤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게 시야를 넓혀준 것, 이 책이 내게 준 배움 중 하나인 것 같아 감사하다.
2. 버티고 싶은 노동자, 정규직이 되고 싶은 비정규직
설희는 여기저기 떠돌며 직업을 찾는 것이 지친 것 같았다. 그녀는 아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을 했을 것이고,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돈까지 내주고 일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었다. 설희는 ‘정규직 직원’이 되고 싶었다. 더 이상 떠돌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정규직 직원’. 설희의 목표와 소원이 너무나 소소해 보여 슬펐다.
3. 절박한 노동자를 가담자로 만든 직장
나도 설희처럼 회사 일을 하며 종종 불법인 듯, 편법인 듯 기분이 묘한 일을 할 때가 있었다. 무서운 건 그 묘한 기분이 그 일의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게 되는 상황. 사람들은 “관례”라는 말을 덧붙여 불법과 편법을 종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이건 불법인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별난 사람 취급하면서 말이다.
노동자를 범죄의 가담자로 만드는 회사는 나쁜 회사다. 있어서는 안 되는 회사이고, 처벌해야 할 회사이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꽤 많은 수의 회사가 그런 회사인 것을. 아파트 금액이 오르는 만큼, 물가가 오르는 만큼, 딱 그만큼씩만 우리의 인식도 변화하고 사회 모습도 변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노동자를 범죄의 가담자로 만드는 회사가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지 않을까.
씁쓸한 뒷맛이 오랫동안 남는 이야기였다.
뚜벅 추천 지수 : 70%
절박했던, 무모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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