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5. 22:50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나도 그때는 내 친구를 제임스 했었다.
-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절
- 그때도 어렸지만 사실 지금도 어린것 같아.
위픽 wefit - 영희와 제임스
- 작가 : 강화길
-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 발행일 : 2024. 07. 10.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84쪽
- 채널 : 종이책
작가 소개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예술종합학교에서 서사창작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 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등을 펴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백신애문학상, 제45회 이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책 소개
“저 애들은 조금 미친 것처럼 보이고, 나는 그게 살짝 웃기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것들이 과거가 되어도
빛바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기다리는 좋아하는 마음에 관하여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백신애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한 강화길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 『영희와 제임스』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촌구석에서 한없이 진지한 글램록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운명이 맞았다. 함께 ‘영희’를 언니라 부르고, 환호하고 감탄하며 기쁨을 느끼던 ‘용희’와 ‘나’는 기다리던 연말 공연을 보러 간 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조금씩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조금은 미친 것처럼 보이고 살짝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함께 좋아하고 ‘우리’가 함께 바라보았기에 충만해지는 마음. 싱겁고 애매하거나 대담하고 열렬한 모든 사랑에 관한 소설『영희와 제임스』의 무대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출처 : 예스24
첫 문장
새벽녘, 잠에서 깼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책은 나와 용희, 그리고 '영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와 용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대학도 같은 곳을 졸업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희'라는 밴드를 좋아했다.
'영희’는 우리가 함께 좋아한 인디 밴드였다. 그렇게 대단히 옛날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시절 그 촌구석에서 한없이 진지한 글램록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를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기적에 가까웠다.
나와 용희는 '영희'를 함께 좋아했다. 다만, '영희'를 좋아하는 '방식'은 달랐다. 용희는 '영희'를 온 힘, 온 정성을 다해 적극적으로 좋아했다. 나는 달랐다. 그래서 용희는 나의 마음을 애매하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종종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그 사람을 특별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가 있고, 곧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도 에너지이고, 내 일상의 한 부분을 떼어내 맡기는 행위이기에 좋아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은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나'는 나와는 달리 노력하며 '영희'를 좋아하는 용희를 보며 용희에게 일종의 팬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좀 더 특별해 보이는 용희의 삶이, 나라는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그 자체가 용희를 특별한 친구로 보이게 했을 것 같다.
이상적인 사랑과 우정, 관계에 대한 표현들 중 제임스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 이것은 새로운 언어다. 나는 영희를 제대로 제임스 할 것이다.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용희는 '영희'를 제임스했다. 용희는 '영희'를 제임스하는 마음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다. 그런 용희의 블로그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와 공감을 나눴다. 나는 용희의 블로그 글을 보며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솔직한 언어를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용희의 글들이 다른 이웃들의 블로그에도 똑같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희의 말에 따르면 그건 함께'제임스 하는 것'이었다.영희'의 팬들이 같은 글을 읽고 공유하고 세상에 퍼뜨리는 것. 그것을 알게 된 나는 나의 친구 용희가 더 대단해 보였다. 그 대단한 사람의 곁에 있는 것이 나라는 게 아마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영희가 아닌, 영희를 좋아하는 용희를 제임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해한다고, 알고 있다고, 자기도 그런 적이 있다고. 이유 없이 서러워지고 삶의 모든 것이 실망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고. 그럼 너는 어떻게 해? 내 질문에 용희는 비장하게 말했다.
“그래도 살아가야지. 제임스 해야지.”
이유 없이 서러워지고 실망감이 몰려오는 순간에도 살아가야 한다. '제임스해야 한다'는 말이 좋았다.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나와 용희, 그리고 영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초반에 알 수 있다. 이미 용희는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그래서 나와 용희가 과거에 나누었던 이 말이 현재의 나에게는 '용희가 없는 세상을 그래도 살아가고 제임스해야 한다'는 뜻으로 느껴져 먹먹하게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 시절 우리는 어떤 감정에 한번 빠져들면 거기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 멈추지 못했다. 방법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감정에 일부러 오래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게 좋았으니까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낙엽만 굴러도 꺄르르 웃는다던 그때.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나름의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단순했던 그때. 웃음이 많았던 그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때에 대한 그리움인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부재 때문인지, 그때의 순간은 내게 즐거움과 쓸쓸함을 함께 가져다준다. 그때는 우정이라는 감정에, 함께한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더 오래 젖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공연에 다녀온 뒤, 용희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세상의 중심이 된 기분이다. 영희는 언제나 내게 이런 행복을 선사한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제임스
거짓말이었다.
열아홉 살 겨울, 나는 용희와 함께 '영희'의 공연에 갔다. 공연 이후 나와 용희의 관계는 달라졌다. 공연은 좋았다.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과 이제 더 이상 애매한 팬으로 남아있지 않고, 제대로 제임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문제는 공연 이후였다. 나는 어쩌면 공연 이후를 더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를 제임스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제임스하는 특별한 내 친구 옆에서 특별한 친구로 나를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이후 용희와 나의 관계는 달라졌다.
10년 전 용희와 나는 연락을 끊었다. 1년 전 용희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용희를 만났다. 그리고 오늘 새벽 용희가 우리 집에 왔다. 밥을 먹고 대화를 했다. 용희는 오늘 나의 일정을 물었고, 나는 병원에 다녀온 후 '영희'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용희에게 말한다.
“그때 네게 물어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용희는 대답한다.
‘뭐를?’
나는 말한다.
“네 마음이 어떤지 말이야. 그날 네 기분도 엉망이었을 거야. 그렇지?”
‘…’
“나를 보는 게 민망했을 거야.”
‘…’
“나는 네게 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
‘…’
그때 너는 어린애에 불과했는데.
나는 그 말을 하려다 관둔다.
그때 옆에서 용희가 속삭인다
‘너도 어렸잖아.’
나와 용희가 함께 공연을 다녀온 후, 나는 용희와 솔직한 대화 대신 침묵을 택했다. 용희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고 그 순간을 되돌아보니 그때는 참 어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린 그때 참 어려서 반짝였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감정을 생각하기엔 내 감정이 너무 커 나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조차 두려웠을 나이. 그리고 이제 상대의 감정을 더듬어볼 수 있을 즈음 컸다 생각했는데 지금 나의 곁에는 용희가 없었다. 용희가 없는 지금 나는 헛헛했고, 미안했고, 그리웠다.
편의점에서 그때의 우리처럼 우스운 애들, 누군가에겐 미친 우리를 봤다. 오늘 나와 용희는 다시 만나 서로를이해해 주었다.그리고, 나는 오늘 올해 봄 재결합한 '영희'를 보러 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책을 보는 내내 친구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다 본 후 '나보다 먼저 네가 죽는다면 너의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 선언했다. 내 중학교 시절은 내 친구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귀했다. 책 속 '나'처럼 내 친구를 제임스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함께하는 순간이 모두 즐거웠고, 내 친구의 일순위가 내가 아닌 느낌이 드는 순간은 괴로웠다. 다행스럽게도 내 친구는 아직 내 곁에 있다. 다만 나에게 과거와 같은 존재는 아니다. 지금 나의 친구는 내 인생, 내 세계의 일부이다. 시간이 지나 각자의 세계가 명확하게 만들어지고 그저 각자의 세계 어느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 나의 그 존재가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
나는 '응답하라 1988' 마지막 장면을 아직 기억한다. 아마 '응답하라'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다. 장면은 참 별거 없다. 성인이 된 덕선이 자신의 집 TV 앞에 있는 어렸을 때의 모습을 한 친구들을 보며 '너네 왜 여기있냐'라고묻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보고 오열했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그 장면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또 슬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장면은 내 눈물 버튼이다. 아마 함께했던 친구들과 보냈던 그 시간이 문득문득 그리워서인 것 같기도 한데, 이 책은 내게 그 장면 같았다.
책을 읽을 때는 감정이 묘했는데 정리를 하다 '너도 어렸잖아'라는 글을 쓰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때가 그리워서인지 그때와 달라진 모습이 내 모습이 서운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위픽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내용은 참 별거 없다 싶은데 너무 재미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작가의 힘인 것 같아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영화 '우리들'이 보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추천했지만 피해 피해 보지 않았던 그 영화. 그 영화를 봐야겠다 싶다. 참 짧은 단편 소설이 이렇게 많은 내 추억과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움을 느낀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난 이 책을 제임스 할것 같다.
솔직히 뭐랄까, 저 애들은 조금 미친 것처럼 보이고, 나는 그게 살짝 웃기다.
뚜벅 추천 지수 : 80%
그 시절이 생각나는, 그리우면서 서글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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