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5. 23:53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피아노가 치고 싶다.
- 일을 시작했을 때의 순수했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웃어주게 되는 것이 어른인가 보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월급사실주의 2024
- 작가 :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24. 05. 01.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268쪽
- 채널 : 종이책
책 소개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 것
그 혹독하고 숭고한 일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매일매일에 대하여
월급사실주의 소설 동인의
지극히 현실적인 밥벌이 이야기 그 두 번째!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출간으로 이어진 바 있으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이 동인이 내놓는 두 번째 결과물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이다. 사회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감지해 온 작가들이 작심하고 직장을 무대로 써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산문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남궁인, 천현우 작가가 성공적으로 완성해 낸 첫 단편소설이 수록된 점,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의 장편소설로 사회적 약자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포착해 온 손원평의 최신작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책의 제목은 소설가 임현석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내놓아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인간적인 갈등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힘을 지닌 제목이다.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소설 역시 다양한 삶의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진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 하루도 애쓰고 있는 모든 일하는 존재들을 위한 이 책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발행된다.
작가 소개
손원평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아몬드』 『서른의 반격』으로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이외 장편소설 『프리즘』, 소설집 『타인의 집』 등이 있다.
출처 : 예스 24
02. 피아노
#공부방 #돌봄 노동 #중고 거래 #세속성vs순수성
첫 문장
혜심은 반쯤 식은 로즈마리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이 단편 소설을 읽고 느꼈던 첫 감정은 ‘다르다’였다. 요즘 많이 나오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간결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이 짧은 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느끼하지 않고 질척거리지 않게 감정과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까. 참 멋있다.
이 책은 공부방 선생님 혜심이 공부방을 정리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혜심이 공부방을 정리하던 중, 공부방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준용이 공부방을 찾아온다. 그런 준용이 혜심에게는 탐탁지 않았다. 벌써 4개월째 수강료가 밀린 준용이 반가울 리 없다. 책은 혜심이 공부방을 정리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혜심과 준용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혜심은 아이들을 좋아한다기보단 가르치는 걸 즐겼다. 어리고, 유연한 존재에게 숫자와 글자를 알려주고 셈을 가르치고 실수를 하나하나 고쳐나가며 단정한 아이로 자라나게 돕는 일이 좋았다.
어렸을 때 잠깐 피아노 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보통의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센 편이었고, 그 당시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와 동선이 맞아 선택하게 되었다. 피아노 전공자도 아니었고, 교육 관련 전공자도 아니었다. 고작 악보 조금 보는 걸로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있었다. 그래도 나름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되니 짧은 지식이라도 잘 알려주고 싶었고, 꼭 지켜야 할 예의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히 어른으로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랬어도 됐나? 생각하게 된다.
혜심의 시작하는 마음을 찬찬히 보니, 난 가르치는 걸 즐기지도 않았고 그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없었는데 괜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함이 몰려온다.
아이들의 선율이 공부방을 채운다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들였던 피아노였다.
책을 보면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설렘과 그 설렘이 바랜 현재를 생각했다. 일을 시작할 땐 나름의 기대와 계획이 있다. “어떤 직업인이 되어야지. 돈은 얼마는 벌고 싶다. 내 미래는 어떨까.”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하며 기대와 설렘의 미소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종일 일하면서 웃는 순간이 잘 없다. 일에 치여서 산다는 마음뿐이다. 시작했을 때의 설렘은 언제 어디로 간 걸까?
피아노 한 대에 혜심의 시작과 설렘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허영심이라 말했지만 바퀴 달린 작은 피아노 한 대에 ‘허영’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저 혜심의 소소한 낭만, 시작의 설렘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피아노를 팔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하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손톱보다 더 잘 말해주는 건 없었다.
….
손톱으로 짐작한 아이의 상태는 언제나 정확했다.
처음 혜심이 준용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고 살짝 놀랐다. 아니, 그래도 애한테 너무 쌀쌀맞다는 생각을 했다. 난 아무래도 책장 밖에 있는 사람이니 혜심의 직업인으로서의 고됨보다는 그저 준용이라는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라도 준용을 환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앉은자리에서 가난해지고 있었던 혜심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거고, 어떻게 보면 그 가난의 한 축에 준용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준용이 반갑다면 그게 거짓말이겠지.
이 부분에서 나는 ‘진짜 이야기’가 느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되는데, 생각보다 이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 그런 방치는 외모나 위생에서 쉽게 나타난다고. 각 가정사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서툼이 아니라 무관심과 방치라면 이런 경우에는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개인과 개인이 해결하기엔 너무 예민하고 어려운 부분이니 결국 국가, 정책 차원의 문제로 확대되어야 하는데… 답답할 노릇이다.
-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삶이 함몰돼
- 함몰.
준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게 무슨 뜻인데요?
- 함몰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되는게 함몰이야.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혜심이 준용에게 ‘함몰’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는 장면이 참 좋았다. ‘선 밖으로 튀어나온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준용의 질문에 혜심은 ‘삶이 함몰된다’고 말한다. 뭐 이렇게 어렵게 말하나 싶었지만, 곧 준용이 그 단어를 되물으며 대화가 계속된다.
준용은 ‘함몰’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잘못’, ‘부끄러움’ 정도로 이해했을까? 그렇게 이해했다면 참 똑똑하고 깊은 아이인 것 같다. 이해를 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해를 못했다면 또 그건 그거대로 마음이 아픈 부분이 있다. 아마 손톱이 지저분한 준용임을 알기에 마음 한쪽이 계속 불편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겐 지겨울 정도로 꿋꿋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도 지긋지긋하기도 한 이유였다.
혜심도 준용도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사실 해피 엔딩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혜심은 마음이 고되고 힘들 때 피아노를 보며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냈으면 좋겠고, 준용은 불안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선생님이 알려준 ‘함몰’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꿋꿋한 구석이 지긋지긋함을 만든다는 말에 참 공감이 갔다. 아이들과 몇 시간만 지내다 보면 저 꿋꿋함에 결국은 넉다운이 된다. 하지만 그 꿋꿋함에 다시 일어나기도 하는 걸 보면 그게 사랑스러움이 맞는 것 같다. 어른으로서 지켜줘야 하는 그 꿋꿋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뚜벅 추천 지수 : 80%
오늘 나를 스쳐갔을 많은 돌봄 노동자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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