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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dont-doze-off 2024. 4. 18. 12:10
  • 텅 빈 무대를 단단하게 채워가는 배우들의 힘 
  • 그래서 고도가 뭔데? 도대체 누군데?  
  • 피식피식 웃다 보면 먹먹함이 차오른다. 

<고도를 기다리며> 포스터 / 출처 : 파크컴퍼니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 공연기간 : 2024. 03. 29 ~ 03. 31 
  • 공연장소 : 대구 아양 아트센트 
  • 공연시간 : 1막 70분 / 인터미션 20분 /2 막 60분 / 총 2시간 30분 
  • Cast : 에스트라공(고고) - 신구, 블라디미르(디디) - 박근형, 럭키 - 박정자, 포조 - 김학철, 소년 - 김리안


앙상한 나무 아래.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기다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로는 슬픈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고도’는 무엇이냐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다. 작품에 대한 관심보다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게 된 작품이다. 대배우들의 연기를 어떠한 필터링 없이 직접 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작품의 전체 맥락을 어느 정도 알고 갔다면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목이 <고도를 기다리며>이기 때문에 괜한 삐뚤어짐에 ‘나는 고도를 안 기다리겠어’ 라고 마음을 먹어도 작품을 보는 내내 고고와 디디처럼  ‘고도 언제 오나’, ‘도대체 고도가 뭔데’, ‘왜 자꾸 안 오나’, ‘어르신들 고생시킨다’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솔직히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 했었다. ‘연극’, ‘고전’, ‘부조리극’이라는 단어에서 묻어 나오는 ‘어려움’과 ’고루함’의 편견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보다 재미있게 봤다.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집중하며 작품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체 극은  1장, 2장으로 나눠져 있고 인터미션 20분의 시간이 있다. 

작품을 보기 전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인 것 같은데 왜 인터미션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작품을 보고 난 뒤, 인터미션이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대사와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꽤나 에너지가 필요한 작품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중 한 장면 / 출처 : 파크컴퍼니

 

막이 오르고 배우들이 등장했을 때 일단 그냥 무조건 반갑다.

그들의 목소리, 움직임, 표정 모든 것들이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고 그 완벽한 배우들이 쉴 틈없이 나누는 티키타카가 피식피식 웃음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원작 자체가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평가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럭키'와 '푸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묘한 긴장감과 답답함을 주면서 상황과 대사에서 주는 아리송함 때문에 어떤 의미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2장은 침묵으로 시작된다. 콘서트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대 위 긴 침묵의 시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신기한 건 두 배우가 만든 긴 침묵의 시간이 초초함이 아닌, 엄청난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쓸쓸함과 체념, 상실의 공기들이 무대를 밀도 있게 메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소리로, 행동으로 무언가 표현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무대를 압도하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침묵의 끝에서 디디(박근형 배우)의 대사가 조용히 읊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몰려왔다. 

 

작품이 끝나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벌써 끝인가', '왜 이렇게 허하지', '왜 이렇게 쓸쓸하지' 그리고 '고도는 언제 오는 거야'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중 한 장면 / 출처 : 파크컴퍼니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뭔가를 기다린다는 건 파랑새 같은 거니 ‘희망’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을 보면 볼수록 나에게 '고도'는 ‘희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도는 ‘죽음’이다. ‘죽음’이 ‘고도’라는 생각을 하니, 이해되지 않은 많은 부분들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는 것은 너무 싫고 슬픈 일이다.

막연히 희망을 기다리는 것도 헛헛한 일이지만, 

언제가 반드시 오게 될 죽음이라는 것을 기다리며,

그것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은 너무 불행하다.

 

나는 고도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인생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었다.

 

덧붙여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2019년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포스터가 이번 포스터 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배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고, 그 부분이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의 큰 강점이 되기 때문에 배우의 모습이 전면에 들어간 포스터 작업을 진행했겠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무드나 메시지는 2019년 포스터가 더 좋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도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

사뮈엘 베케트

 

 

+

덧붙여

오늘은 5월 12일이다. 오늘 우연히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말 그대로 우스운 이야기다. 현재 이 연극은 여러 지역을 돌아가며 전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현재 앙코르공연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공연에서 럭키역의 박정자 배우와 소년역의 김리안 배우는 다른 남자 배우로 교체되었다. 이유는 하나 '여자 배우'이기 때문이다. 원작자인 베케트 에스테이트가 원작자의 의도를 정확히 따라주길 바라며 여배우의 출연을 원하지 않는다는 요구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국내 고도를 기다리며 역사상 여배우 출연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원작자가 생전에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자신의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릴 것을 요청했고, 그의 사후 저작권을 관리하는 이가 작품에 어떤 각색과 수정이 있을 때마다 제동을 걸기로 유명하다고. 여배우 캐스팅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한 바가 있다고 한다. 2024년 5월 12일 이 이야기는 부조리 그 자체이다. 시대착오적이다. 작가의 의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일부 이해되면서도 그것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예술의 영역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정 부분 오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예술 참 어렵고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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