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9. 21:34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공연 & 전시
- 인생 작품이 되었다.
- 배우의 연기에 압도당한 120분
- 여운이 너무 길다.
연극 <맥베스> MACBETH
- 공연기간 : 2024. 07. 13 ~ 08. 18
- 공연장소 : 해오름극장
- 관람시간 : 120분
- 공연시간 : 화, 목, 금 오후 7시 30분 / 수 2시 / 토 오후 2시, 6시 / 일· 공휴일 오후 2시 (월 공연 없음)
- 관람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 티켓가격 : VIP석 110,000원, OP석 99,000원, R석 88,000원, S석 66,000원, A석 44,000원
- Cast : 맥베스 - 황정민, 레이디 맥베스 - 김소진, 뱅코우 - 송일국, 덩컨 - 송영창, 맥더프 - 남윤호, 맬컴 - 홍성원, 마녀들 - 임기홍 / 윤영균 / 김범진, 로스 - 박종태, 레녹스 - 김대진, 앵거스 - 도광원, 시튼 - 김연수, 앙상블 - 이원 / 이재웅 / 김정현 / 유지리산, 플리언스 - 이주원, 맥더프 아들 - 강예찬
시놉시스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내야 하니까.”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는 뱅코우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와 마주치게 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왕이 될 것이며 뱅코우의 자손 또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를 부추겨 덩컨 왕을 살해하게 만든다.
왕이 된 맥베스는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마녀들의 예언 때문에 점점 불안감에 휩싸여 또 다른 예언의 대상이었던 뱅코우와 맥더프의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이에 대한 죄의식으로 죽은 이들의 환영과 공포에 시달리며 고통받는다.
한편, 맥베스에 의해 가족을 잃은 맥더프와 덩컨 왕의 장남 맬컴은 복수를 하기 위해 잉글랜드에서 군대를 모으며 스코트랜드로 쳐들어 올 준비를 하는데 …
인물 소개
맥베스 MACBETH - 황정민
왕위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파멸하는 인물. 마녀의 예언으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덩컨 왕을 죽이고 스코틀랜드 왕이 되지만, 왕위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 김소진
맥베스의 아내이자 맥베스가 왕위를 차지하도록 부추기는 인물. 덩컨 왕의 죽음 이후, 남편 맥베스가 왕위를 가지게 되고 함께 명예와 권력을 얻게 되지만, 왕위를 지키기 위한 끝없는 살인과 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몽유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뱅코우 BANQUO - 송일국
맥베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맥베스와 함께 마녀들에게 본인의 자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지만, 맥베스의 욕망에 의해 살해당한다.
덩컨 DUNCAN - 송영창
스코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의 자비로운 왕으로서, 맥베스의 공로를 치하하고 그에게 코더영주의 작위를 내리지만 마녀의 예언에 따라 왕위를 가지려는 맥베스의 욕망에 의해 살해당한다.
맥더프 MACDUFF - 남윤호
스코틀랜드의 귀족.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맥베스에게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덩컨 왕의 아들 맬컴과 함께 군대를 모아 맥베스를 죽이고 스코틀랜드의 평화를 되찾는다.
맬컴 MALCOLM - 홍성원
덩컨 왕의 아들. 맥베스의 계략에 의해 아버지 덩컨 왕이 살해당하고 스코틀랜드를 떠나게 되지만, 맥더프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스코틀랜드의 질서를 회복하고 차기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다.
마녀들 Witch’s - 임기홍, 윤영균, 김범진
맥베스에게 세 가지 예언을 던지는 어둠의 존재로 그에게 왕에 대한 욕망을 일으켜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렇게 우연히 작품을 보게 될 수 있을까? 다른 공연 예매 때문에 들어간 사이트에서 이 작품의 배너를 보고, 티켓팅 시간과 맞길래 티켓을 예매해 봤다. 그런데 너무 좋은 자리를 얻게 되어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본 연극이 ‘고도를 기다리며’였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에게는 고전을 즐길 수 있는 교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이 아닌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 ‘맥베스’는 제대로 보고 싶어서 꼭 연극 보기 전에 책을 읽어야지 다짐했지만, 많은 순간 그러했듯이 나의 다짐은 장마철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지식 없이 공연장에 갔고,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났다.
1. 고전 작품의 얼개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작품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공연 시작 전,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맥베스’는 유럽풍의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무대였다. 색감이 가득하지는 않아도, 우아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이 서 있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함을 상상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자칫 기괴해 보이는 회색빛 공간과 수도꼭지였다. 그래, 저 때 사람들도 씻고 살았겠지 생각했지만, 너무 신식 수도꼭지라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기다렸다.
가끔 나의 이런 ‘무식함’과 ‘그럴 수도 있지’에 내가 놀란다.
연극이 시작되자, 배우들이 까마귀를 돌리며 등장한다. 배우들이 얼굴을 대부분 가렸지만, 잘생김까지는 가려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얼굴을 보는 내가 정말 싫었다. 관객석을 돌아다니며 까마귀를 돌리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야’ 하다가 배우들의 진지함에 점점 극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옷을 보면서, 이 작품이 현대적으로 해석된 것임을 알게 된다. 리뷰를 정리할 때, 처음에는 ‘현대적 각색’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 표현이 적당하지 않게 느껴졌다. 연극 ‘맥베스’는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원작에 충실한 느낌을 받았다.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느껴졌다는 이런 느낌적 느낌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런 나의 무식함을 연출자의 인터뷰가 해결해 줬다.
“재해석의 기준에서 원전을 최대한 그대로 올리지만, 보이는 것은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양정웅 연출
시각적 요소에서 느껴지는 현대적 감각과 대사와 내용에서 느껴지는 고전의 우아함이 너무 잘 어우러져, 각각의 감각에서 주는 아름다움이 최대치로 올라간 느낌이었다. 연극에서도 연출과 미술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출을 했다는 양정웅 연출가의 의도처럼, 대사는 마치 책을 보는 듯한 낯선 단어와 문장이 귀를 때린다. 그런데 그 낯섦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최근 황석희 번역가가 연극, 뮤지컬 작품의 번역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이 부분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다. 자칫 고전이 주는 어색한 톤과 대사들이 지나치게 낯설고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맥베스’는 배우의 힘인지 번역의 힘인지,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다가왔다.
‘맥베스’는 여러 가지로 내가 연극과 고전에 품고 있던 편견들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준 작품이 되었다.
2. 연기에 압도되다.
“웃는 얼굴로 세상을 속이러 갑시다. 사악한 마음은 가면으로 감추고…”
배우들에게 압도당한 120분이었다. 이런 연기 앞에서 ‘압도한다’는 말밖에 쓸 수 없는 내가 멍청해 보일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모든 배우가 그러했다.
개인적으로 황정민 배우는 너무 좋은 배우이고 대단한 배우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그의 연기가 다소 눈에 띄어서 작품에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맥베스’를 보고 황정민이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깨닫게 되었다. 운이 좋게 가까운 자리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었고, 극을 보는 내내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연극 중간중간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정민은 완전히 맥베스였다.
황정민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처음 등장할 때의 순수하고 정의로운 얼굴이 서서히 욕망과 불안, 공포와 타락으로 변해가며, 모든 감정을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연기해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이 모든 감정과 이야기가 내 눈앞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난 당신 본성이 걱정이네요. 당신은 지름길을 택하기엔 인정이 많고,
위대한 야망이 넘치면서도 그걸 차지할 악함이 없어요. 악한 걸 원하면서도 성스럽길 바라죠.
레이디 맥베스 역할의 김소진 배우도 대단했다. 김소진 배우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중저음의 목소리로 셰익스피어 톤이 강한 대사를 읊을 때는 고막이 녹는 줄 알았다. 중간중간 대사에서 귀를 건드리는 톤이 있었는데, 그 톤을 녹음해서 하루 종일 듣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아.. 나쁜 사람 같은데’, ‘저거 저거 저라면 안 되는데’, ‘저거 저거저거저거 와저라노’ 하면서도 김소진 배우가 대사를 읊으면 ‘그래.. 어쩔 수 없지’로 바뀐다. 아마 맥베스도 이 달콤한 부추김에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 게 아닐까. 나라도 김소진 배우가 옆에서 해라해라 하면 할 것 같다. 연극을 보는 내내 정말 매력적인 마녀에게 홀린 느낌이었다. 진짜 마녀는 그녀가 아니었을까.
레이디 맥베스는 초반에는 이성적이고 단호하며 당당해 자칫 사악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며 나약해진다. 여기서도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내 마음을 그녀에게 빼앗겨 버려서 제발 정신 차리고 나쁜 짓 하라며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배우에 대한 애정이었다.
이번 ‘맥베스’는 김소진 배우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남자 배우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다고 한다. 마녀들의 캐릭터는 충분히 납득 가능했지만, 맥더프의 부인까지 남자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레이디 맥베스라는 역할과 김소진 배우가 성별에 따라 존재감의 크기를 좌우할 정도의 배우도 아니고, 관객들도 그 이유 때문에 그녀를 더 존재감 있게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다른 의미나 의도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다른 많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극의 시작을 여는 마녀들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마녀들은 여자의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 배우들이다. 책에서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하게 설정된 캐릭터들이다. 이 마녀들은 기괴하다. 시체를 주우러 다니고, 이상한 끈으로 별을 만든다. 그리고 예언을 한다. 이들의 예언이 하나둘 맞아갈 때 맥베스는 미쳐간다. 마녀들은 윤영균, 김범진, 임기홍 3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윤영균 배우와 김범진 배우의 신장 차이가 60cm 정도로 극단적이다. 이 극단적인 키 차이가 마녀들의 캐릭터를 더욱 강조하고, 몰입하게 한다. 배우의 몸을 활용하여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녀들이 극 중간중간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지켜보듯 서 있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들의 예언에 사로잡혀 타락해가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이 더 강조되게 느껴졌다.
3. 손을 씻는다.
걱정하지 마. 물로 씻으면 지워질 거야. 얼마나 쉬워?
손 씻는 장면이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수도꼭지를 유심히 봐서 그런지, ‘손을 씻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었다. 맥베스 집에서 열린 만찬의 테이블에도 모두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이 집은 정말 손 씻기에 진심이구나 생각했다.
맥베스가 던컨 왕을 살해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려고 몸부림친다. 레이디 맥베스 역시 빨리 손을 씻으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핏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이 더러운 피를 씻어내고 싶어도,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이 행한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었기에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적의 머리를 들고 온 당당히 피 묻은 손을 치켜올린 그는 이제 없었다.
레이디 맥베스 역시 극의 후반부에서 몽유병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손을 씻는다. 그녀의 손은 깨끗했지만,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알기에 더러운 손을 씻어내고 싶어했다. 맥베스와 함께 권력을 욕망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쟁취한 그녀도 맥베스처럼 씻어낼 수 없는 핏자국에서 서서히 메말라가게 된다. 꿈속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역시 손을 씻어도 핏자국을 지울 수 없었다.
내용을 더 찾아보니 ‘레이디 맥베스 효과’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맥베스 효과’, ‘맥베스 부인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잘못된 행동을 하고 난 뒤 손을 씻어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부정한 행동을 하고 고작 손을 씻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오만. 이런 만족과 이기, 오만이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추락을 도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글에 계속 …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 > 공연 & 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Jung Youngsun: For All That Breathes On Earth (20) | 2024.08.09 |
---|---|
[연극] 맥베스 MACBETH-02 (24) | 2024.07.20 |
[전시] 키크니 : 일러바치기 인 부산 (1) | 2024.06.01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0) | 2024.04.26 |
[전시] 기안84 제2회 개인전 : 奇案島 (기안도 ; 기묘한 섬) (0) | 2024.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