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맥베스 MACBETH-02

2024. 7. 20. 20:00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공연 &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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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연극 <맥베스> 중 한 장면 / 출처 : 샘컴퍼니

 

 

4. 욕망과 불행. 진짜 마녀들이 원했던 것.

 

 

만세 맥베스! 글래미스 영주 만세!

만세 맥베스! 코더 영주 만세!

만세 맥베스! 왕이 되실 분!



 

맥베스는 마녀들을 보기 전까지는 능력 있고 충성스러운,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는 장군이었다. 친구 뱅코우와의 신의도 깊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녀들의 예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뱅코우와는 달리, 맥베스는 마녀들의 이야기가 하나둘 맞아가면서 결국 그 예언에 집착하게 된다.

 

마녀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예언을 전하고, 그 예언을 받들며 집착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인간을 보는 것이 그들의 유희였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예언으로 타락하게 될 맥베스의 모습까지 알고 있었을까? 마치 자신들이 짜놓은 판에서 재미있게 굴러가는 한 편의 극을 보듯, 마녀들은 늘 묘한 표정으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맥베스는 결국 죽음의 순간까지 예언에 집착한다. 마녀들의 예언에 사로잡혀 더 이상 어떤 판단도, 이성적인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린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져가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보며 욕망과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목표에 대한 집착이, 어느 순간 목표마저도 잊어버릴 만큼 강해진 욕망이 만들어낸 파멸은 마녀들에게는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즐거움을, 스스로에게는 끝나지 않은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현시대에서도 얼마나 많은 마녀들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을까. 사람의 욕망에 불을 붙이는 달콤한 속삭임이 더해진다면, 그 존재가 파멸로 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이번 맥베스를 보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연극 <맥베스> 중 한 장면 / 출처 : 샘컴퍼니

 

5. 2024년의 대한민국과 맥베스. 아주 시의적절하다. 

 

바람아 불어라, 오너라 파멸아!

 

 

현재 내가 사는 세상과 맥베스의 세상이 너무 닮아 있어 아주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의 예언으로 큰 권력을 탐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얻고 휘두른다. 부인은 자신의 귓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잘못된 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해 준다. 아니, 그 이상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체스게임을 하듯  맥베스가 더 악한 방향으로 가도록 한 칸 한 칸 옮겨주며, 더욱 빠르게 파멸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머리와 마음이 아닌, 칼과 예언으로 통치하고 술에 집착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백성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결국 파멸에 다다른다.

 

 

 

 

연극 <맥베스> 중 한 장면 / 출처 : 샘컴퍼니

 

6. 고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연출

 

전체적인 연출이 좋았지만, 공간을 활용해 영상을 보여주는 연출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하기 위해 그의 침실에서 덩컨 왕을 찌르는 장면은 굉장이 임팩트가 컸다. 그 장면에서 덩컨의 얼굴을 무대 양쪽 벽에 영상으로 보여준다. 덩컨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아 그 순간 그의 고통과 절망, 배신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점점 무너져 흘러내린다. 이 장면은 기괴하면서도 작품의 무드와 상황을 관객들에게 잘 느끼게 해 주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욕망과 타락이라는 주제, 그로테스크한 공간이 작품을 지나치게 무겁게 느끼게 할 수 있지만, 종종 전환해주는 가벼운 장면들이 있어 전체 극의 밸런스를 잘 잡아주었다.

 

 

 

연극 <맥베스> 메인 포스터 / 출처 : 샘컴퍼니

 

7. 아트디렉트 '요시다 유니'

 

이번 작품의 비주얼 아트 디렉터는 요시다 유니이다. 익숙한 이름이라 찾아보니, 그녀는 여러 작품에서 익숙한 유명 아티스트였다. 처음 이 아티스트를 알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과일을 전체 사진과 잘라진 사진으로 구성한 독특한 비주얼을 보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맥베스> 포스터가 너무 인상 깊어서 포스터 디자이너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녀가 이 작품의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고 놀랍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연극이나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진행하는 스튜디오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기획사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와의 협업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기존의 연극 홍보 방식에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을까요?”
“기존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연극과 뮤지컬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기존의 공연스러운 포스터가 아닌 좀 더 넓은 시야로 다양한 관객층의 니즈를 충족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 <맥베스> 김미혜 프로듀서 / 출처: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공연 포스터에 대한 관점을 확장시키고 싶었다는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는 개인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시도와 확장은 그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요시다 유니의 작품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되었고, 그녀의 아트워크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자극을 느꼈다.

 

그녀는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할 때 직접적인 상징을 자연스럽게 넣는 것을 매우 잘 표현하는 아티스트인 것 같다. <맥베스>의 두 배우의 의상과 포즈를 활용해 왕위와 욕망을 상징하는 왕관과 검을 표현한 것도 그녀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맥베스>를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세련되고 강력한 아트워크라고 생각하며, 지난번 한국에서 그녀의 전시를 가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이번 기회로 앞으로의 작품이 너무 궁금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8. 마치며

 

<맥베스>의 커튼콜 때 배우들의 인사를 보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연극을 보는 내내 누군가 내 심장을 꽉 잡고 있다가 커튼콜 때 스르륵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무언가 벅차올랐다. 처음 경험해 본 감정이었다. 콘서트나 뮤지컬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고, 배우들의 연기에서 그 새로움이 시작된 것 같다. 지금까지 봤던 작품들도 좋은 배우들 덕분에 행복하고 많은 감동을 느꼈지만, 이번 <맥베스>는 달랐다. 배우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신기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존경을 보내고 싶은 작품이었다.

 

 

 

 


뚜벅 추천 지수 : 100%

꼭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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