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7. 23:59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나름에 대한 나름의 해석
- 누군가를 떠내 보낸다는 것
- 그래 도망은 때론 나쁜일이 아니야
위픽 wefic - 나름에게 가는 길
- 작가 : 전삼혜
-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 발행일 : 2024. 02. 21.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72쪽
- 채널 : 종이책
작가 소개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걷다가 보니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2004년에 덜컥 [마비노기]를 깔았다가 많은 게 변한 사람. 게임 팬픽을 공식 카페에 연재하다 지망 대학을 정했다. 2016년부터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청소년 SF의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목표는 ‘한국 청소년들이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 2기 부대표이며, 2010년부터 겸업 작가 생활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 전직 판교의 등대지기.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며 노동 중.
2010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날짜변경선』, 소설집 『소년소녀 진화론』과 『위치스 딜리버리』 등을 발표했고, 앤솔러지 소설집 『어쩌다 보니 왕따』, 『존재의 아우성』, 『사랑의 입자』, 『엔딩 보게 해 주세요』, 『인어의 걸음마』에 「고래고래 통신」을 수록하는 등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책 소개
“간절히 원하면 ‘나름’을 만들 수도 있나요?”
우주 쓰레기 청소부의 애도에 관하여
《위치스 딜리버리》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전삼혜 작가의 신작 《나름에게 가는 길》이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나름에게 가는 길》은 광막한 우주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소중한 이를 애도하는 우주 청소부의 이야기다. ‘시현’의 직업은 우주 곳곳에서 값나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브리 피커. 그런데 시현이 모은 쓰레기에는 종종 우주 유령이라 불리는 ‘나름’이 붙어 있다. 우주를 가득 채운 사념은 사람들이 버린 물건에서 정보를 흡수하고 마치 살아 있는 양 움직이는 나름이 된다. 어떤 이들은 죽은 가족을 나름으로 되살리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떠나보낸 동생 ‘아영’의 유품을 찾으러 떠나는 시현도 결국 나름을 만들어내게 될까.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과 흩어져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의 좁은 틈새로 시현의 작은 데브리유도선이 날아간다.
출처 : 예스24
첫 문장
나는 직업이 두 개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위픽 시리즈는 책이 참 예쁘다. 판형도 디자인도 좋다. 그리고 단편이라 책 읽기 싫을 때 다음을 위한 기름칠로 이만한 시리즈가 없다. 생각보다 많은 책이 나와 있어서 이 시리즈를 모두 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나름에게 가는 길>이다.
주인공 시현의 직업은 두 개다. 데브리 피커와 우주의 '나름'을 처리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주 청소부이자 우주 퇴마사이다. 우주에 있는 쓰레기를 청소하고 쓰레기에 붙은 유령을 논리적으로 떼어낸다. 데브리에 '나름', 즉 유령을 떼어내야 쓰레기를 잘 팔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작업 처리를 위해 추가적으로 얻게 된 직업이다. 처음에 '나름'이라는 말이 참 이상했다. '데브리'도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나름'은 익숙한 단어인 듯했지만 용도가 낯설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름은 형체를 입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지구를 떠나 희망을 품고 우주를 떠돈다. 단지 우주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팽창하고 있을 뿐인데 인간은 우주에 많은 걸 부여한다.
의미, 의미, 의미들.
의미들은 나름을 낳는다.
우주의 나름은 지구인들이 우주로 쏘아 올린 많은 이야기와 정보들로 형성된다. 질량은 없지만 기억과 형상이 있다. 처음에 어린 왕자 귀신이 붙은 나름의 이야기를 봤을 때까지도 정확히 나름이 어떤 존재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령이라고 하니 그냥 유령이구나 했었다. 그리고 저 구절을 봤을 때, 우주로 쏟아진 여러 의미가 만든 존재가 '나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현에게는 몸이 좋지 않은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유골을 우주 납골당에 보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 100개의 유골을 모은 우주선이 실종된다. 시현과 함께 유골을 잃어버린 또 하나의 인물이 선우다. 시현과 선우는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유골 실종 사건 이후 가까이 지냈다.
처음 아영의 좌표를 찾았다는 아빠의 연락을 보고 난 아영이 죽은 줄 몰랐다. 살아있어서 이렇게 찾는 거겠거나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렇게 찾는 것이 아영의 유골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 물론 유가족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임은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유골을 이렇게나 찾아다니는 것이 의아했다. 그리고 유골에 집착하는 건 선우네 부모님도 같았다.
간절히 원하면 나름을 만들 수도 있나요?
간절히 원한다면 나름을 만들 수 있다는 이 질문을 보고, 아영과 선우의 부모님이 찾는 것은 유골이 아니라 본인들을 먼저 떠난 자식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납골당에는 유골함과 함께 고인의 유품도 보관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유품의 기억과 정보, 그리움이 결국 나름을 만들고야 만다. 그들은 본인의 자식으로 보이는 나름을 만들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선우의 부모님은 아영의 부모님보다 먼저 자신의 아이의 나름을 만들고, 만났다. 처음엔 그들은 아이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고, 점차 그 감정은 후회와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고라는 이름으로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다. 선우의 가족을 옆에서 봐왔고, 나름 전문가로서 시현은 부모님의 선택과 행동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환생할 수도 없고 허공에서 떠돌다 사라질 뿐이라면 넋도 한도 없는 곳에서 흩어지기를. 흩어져서 무엇도 아니게 되기를.
아파하는 것은 마음으로 충분하니 아영이 너는 너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으로 가기를.
그렇게 바랄 뿐이다.
우리는 다를 뿐이다.
아영은 부모님과는 추모의 방식이 달랐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만의 선택을 했다. 누군가를 영영 잃어버린다는 감정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떠나보낸 가장 큰 슬픔은 함께하던 강아지였다. 강아지의 유령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아이가 그때의 기억으로 나와 함께할 수 있다면 순간적으로는 좋을 것 같다.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순간의 감정이 아닐까?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산책할 수도, 먹지도, 냄새도, 촉감도 그 어느 것 하나 함께할 수 없는데 그것이 진짜 그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 그리움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TV에서 AI를 통해 떠나간 사람을 우리 곁으로 잠시 보내준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내였고, 친구였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생과 "너라면 저 선택을 했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얼마나 그리울까만은 내 대답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리움에 지쳐 그런 선택을 했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용기도 결단력도 없어 그 선택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기술력이 만들어준 두 번째 만남에서 도망친 것이다.
이 책 표지에는 "도망은 때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누군가에게 도망은 어쩌면 도망이 아닌 떠난 누군가를 보내주고, 현실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언젠가 올 그 이별에 나는 꿋꿋하게 도망쳐 그리움은 마음속에 넣어두고 현실을 살아가고 싶다. 사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시기가 많이 많이 늦춰지길 바랄 뿐이다.
추천한다면
- 책이 짧아 누구든 가볍게 접근하기 좋다.
- SF 소설 입문자가 읽기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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