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4. 11:56ㆍ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책
- 외롭다
- 제주도에 가고 싶다.
- 글자들이 참 먹먹하다.
위픽 wefic - 오로라
- 작가 : 최진영
-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 발행일 : 2024. 02. 21.
- 국가 : 대한민국
- 카테고리 분류 : 한국 단편소설
- 페이지 : 99쪽
- 채널 : 종이책
작가 소개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팽이』, 『겨울방학』 등을 썼다. 앤솔러지 『장래 희망은 함박눈』을 함께 썼다.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책 소개
“믿음 없는 사랑은 가능한가. 사랑 없는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
그게…… 완전히 없을 수가 있는가.”
제주의 겨울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최진영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단상들
《구의 증명》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을 쓰고 2023년 〈홈 스위트 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사랑의 다채로운 면면을 재발견해온 최진영의 신작 소설 《오로라》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제주 생활을 시작한 작가가 “조커 카드로 아껴두겠다고 다짐했었”던 제주도를 처음으로 배경 삼은 작품이기도 하다.
제주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 스스로를 죄는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죄책감 대신 자유, 진실 대신 거짓을 택하고 ‘오로라’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한 ‘너’를 비웃듯 발코니에서 죽은 새가 발견된다. 봄이 오면 녹아 사라질 걸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마음으로 한 사람의 손을 잡는다. 종잡을 수 없는 겨울 제주의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사랑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른다.
출처 : 예스 24
첫 문장
네 친구는 말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여행길을 걷다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뭐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에서 <오로라> 작품을 선택했다. 분명 꽤나 활기차게 걷고 있었는데 한 구절 한 구절 들으면서 괜히 발걸음이 늦어지고 우울해졌다. 그리고 계속 내용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소리로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 오디오북을 중단하고 종이책으로 돌아갔다.
너는 너무나도 네 편에서 생각했기에 진정한 네 편이 되지 못했다.
소설은 제삼자의 시각에서 인물을 바라본다. ‘너’라고 지칭하는 문장들이 좋았다. 외롭기도 했고, 듬직하기도 했다. 너는 제주도에 두 달 살기를 하러 왔다. 친구의 사정으로 친구가 예약한 숙소에 대신 오게 되었다. 너는 선의를 베푼 행위였지만 친구는 ‘좋겠다. 난 네가 정말 부럽다’는 비아냥이 느껴지는 문자를 보냈다. 너는 불쾌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결국 그 불쾌함과 당혹감을 곱씹을수록 너의 문제를 찾아 너를 탓했다. 너는 그런 아이였다.
어떤. 믿음에는 이기적인 구석이 있지. 너는 믿음에 깃든 이기심을 되새긴다. 당신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은 오직 나를 위한 마음. 당신을 끝까지 믿는다는 말은 나를 절대 배반하지 말라는 요구. 그러므로 믿는 마음에는 이기심보다 더 큰 외로움이 숨어 있다.
너는 아마 이별을 한 것 같다. 그리고 타의가 섞여 있었지만 제주도로 숨었다. 이 책은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너무 거창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이 작품은 ‘멍한 아픔’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까지 갈 것 도 없었다. 너는 ‘믿음’과 ‘사랑’을 나란히 두고 어떤 답을 찾거나 문제를 찾으려 했지만, 나에게 너는 그냥 멍하게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어떤 이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너는 너의 성격대로 또 너를 탓하는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다. 또는 잠재되어 있다.
너는 문득 ‘숨다’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게 몸을 감춘다는 뜻도 좋았지만, 잠재되어 있다는 의미가 더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게 몸을 감춘 이유가 잠재된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을까? 너는 그렇게 누군가에게서 숨어, 누군가를 향한 너의 잠재된 마음과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너는 이 섬에서 최유진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물어본다면 ‘오로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로라는 한때 네가 무척 갖고 싶었던 이름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너는 연기하듯 말한다.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오로라입니다.
사실 여기서 나는 피식 웃었다. 너는 새로운 이름이 ‘오로라’라니.
물론 전국, 전 세계의 ‘오로라’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이름이 웃겼다. 자꾸 오로라 공주가 생각나서.
어떤 여행지에서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참 좋다. 난 여행을 자주 하지 않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지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서다. 특히 외국으로 향하는 여행은 그 느낌이 더 강조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내 귀에는 내가 그 뜻을 전혀 모르는 언어가 가득 찬다. 그때 뭔가 모를 자유로움을 느낀다.
너는 자유롭고 싶었다. 최유진에서 벗어나, 네가 만들어낸 ‘오로라’로 살아가며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함부로 다정하게 굴지 마세요. 외로운 사람을 오해하게 두지 말아요.
내 눈을 빤히 바라보지 마. 사냥하듯 사랑하지 마. 잘못을 실수라고 말하지 마.
너가 말한 사랑과 이별의 장면장면에 눈물이 났다. 아프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다. 전 연인과의 말다툼에서 나의 다툼이 생각났고, 절절하게 요청하는 너의 마음에 나까지 외로워졌다. "다정하게 굴지 마세요. 사냥하듯 사랑하지 마세요. 잘못을 실수라고 말하지 마세요." 곱씹어 읽게 되는 이 구절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와전한 이별이라. 그건 마치…
그가 위스키 잔을 가볍게 돌리며 중얼거린다.
- 우리는 새를 묻었죠.
그의 목소리가 돌연 작아진다.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를 향해 너는 몸을 깊이 기울인다.
- 그 새가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땅을 파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너는 숙소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고 관리인과 함께 그 새를 묻어주었다. 우연히 찾게 된 위스키 바에서 너는 지어낸 이야기를 관리인에게 말한다. 그 대화를 통해 너는 이 숨바꼭질에서 찾고 싶은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을 깨닫고 그와 마지막 통화를 한다. 그게 정말 마지막 통화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제주도의 겨울밤이 지나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코끝이 찡해지다 결국 책을 모두 읽고 울음이 몰려왔다. '사무치게 외롭다'는 말을 이때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단어의 조합만 생각났다. 아, 외롭다. 그리고 참 그립다.
다행히 나는 파묘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묻은 사랑과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혼자서도 이 외로움과 고독, 쓸쓸함을 잘 즐기고 있다. 한 번 묻은 무언가는 파내는 게 아니다. 내가 인생에서 겪은 나름의 교훈이다.
친구가 이 책에 대해 "어떤 내용이야?"라고 물었다.
"유부남을 만나고 헤어진 여자가 제주도에서 두달살기 하는 내용이야"라고 설명했다.
친구가 "그게 다야?"라고 물었을 때에는 "응"이라고만 답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저 한 문장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사건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사건은 단조로웠지만, 너의 감정은 수십 수백가지였다. 그것을 요약해서 전달할 순 없었다. 나는 너에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다른사람에게는 또 다른 감정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이 참 좋았다. 많이 아프고 슬펐지만, 오로라가 아닌 너로 마지막을 맺는 것이 너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 좋았다. 너가 나 같아서 책을 읽는 내내 그렇게 마음이 쓰였나 보다.
그리고 다행히 사랑은 변화무쌍합니다.
'사랑'의 자리에 '사람'을 넣어도 좋겠습니다. '변화무쌍'의 자리에 '영원'을 넣어도 괜찮을 테고요.
다시 말하자면, 매일과 당신은 매 순간 낯설고도 신비롭군요.
그리워합니다.
작가의 말 중
추천한다면
- 쓸쓸한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시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좋아할 것 같다.
- 작품을 곱씹다 보니 ‘나의 해방일지’가 생각이 났다. 그 작품의 무드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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